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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즈 역사 - 세기의 전환기 : 뉴올리언스
세기의 전환기에 뉴올리언스는 민족과 인종의 도가니였다. 이 도시는 루이지애나가 미국영토로 편입되기 전에는 에스파냐와 프랑스 영토였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다음에는 영국과 이탈리아, 마지막으로 독일과 슬라브인들이 노예로 팔려 온 수많은 아프리카 이주민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흑인들 중에서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차이가 있었다. 그 의미는 영국과 에스파냐 출신 백인들의 차이점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자발적인 이주민과 비잘발적인 이주민들은 무엇보다 그들 고유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고향의 살아 있는 소리였다. 뉴올리언스에서 그들은 영국민요를 부르고, 에스파냐 춤을 추었으며, 프랑스 발레 음악을 연주했고, 프러시아나 프랑스풍의 브라스밴드 선율에 맞춰 행진했다. 교회에서는 청교도와 카톨릭 신자, 침례교도와 감리교도의 찬송과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소리와 더불어 흑인 노점상들의 '호객소리'가 흑인의 춤과 리듬 속에 뒤섞여 있었다.
1880년대에는 흑인들이 정기적으로 콩고 스퀘어(Congo Square)에 모여 부두교 의식을 치렀는데, 그로 인해 반쯤은 잊혀진 아프리카 전통 신앙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지 얼마 안되는 이들은 고향에서 그들의 신에게 행했던 것처럼 노래와 춤으로 새로운 신을 찬양했다. 옛 뉴올리언스는 대단히 음악적인 도시였다. 1900년대에 약 30개에 달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당시 뉴올리언스의 인구가 20만 명 남짓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정도의 도시에서 30개의 오케스트라가 활기찬 신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그 당시의 뉴올리언스를 기이하고 이국적인 낭만의 상징으로 기억하게 만든 풍토를 조성했던 것이다. 미시시피 삼각주에 위치한 이 도시가 재즈의 발생지였다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신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중요한 측면들이 결정된 곳이었다. 흑인 농장 노동자들의 노동요와 같은 시골 음악에 있어서, 그들이 야외에서 행하는 종교의식에서 부르던 영가(spiritual)에 있어서, 그리고 오래된 '원시' 블루스-포크송에 있어서, 뉴올리언스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이런 모든 요소가 최초의 재즈 형식에 혼재되어 있었다.
블루스 작곡가 W.C. 핸디(W.C. Handy)는 1905년경 멤피스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뉴올리언스와 아주 딴판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1917년이 되어서야 뉴올리언스에서 그런 음악을 볼 수 있었지요" 핸디의 말이다. "모든 서커스 밴드가 그렇게 연주했어요" 미시시피 삼각주 전체에 새로운 음악들이 넘쳐났다. 이 모든 것이 서로 무관하게 생성된 것이었다. "미시시피 강과 뉴올리언스 모두 재즈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뉴올리언스는 특별한 곳이었다. 1930년대의 중요한 재즈 뮤지션 중에서 반 이상이 그곳 출신이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청교도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가치가 지배했던 미국의 타 도시들과 달리 뉴올리언스의 옛 프랑스-에스파냐 도시 문화는 상호 교류에 호의적이었다.
둘째,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전혀 다른 두 흑인 집단이 여기에서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갈등과 도전을 유발시켰다.
셋째, 유럽의 '진지한' 음악과 비교되는 열정적인 음악 생활을 흑인들은 지속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넷째, 편견과 계급의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 도시의 홍등가 스토리빌(Storyville)에 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들었다.
뉴올리언스의 두 흑인 집단은 '크레올(Creole)'과 '아메리칸 니그로(American Negro)'였다. 그러나 지리학적으로 크레올은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오히려 더-미국인이었다. 루이지애나 주의 크레올은 옛 프랑스 식민지 문화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다른 흑인들처럼 남북전쟁 말기에 자유의 몸이 된 노예의 후손이 아니었다. 그들의 조상은 훨씬 오래전부터 자유인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남다른 충성으로 부유한 프랑스인 농장주와 상인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옛 뉴올리언스에서 프리 니그로(free negro)개념은 중요한 것이다.
크레올 흑인들은 프랑스 문화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 다수가 부유한 사업가였다. 그들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크레올어였는데, 그것은 에스파냐와 아프리카 말이 첨가된 프랑스 방언이었다. 그들은 이름도 프랑스식이었다. 알퐁스 피쿠(Alphonse Picou), 시드니 베셰(Sidney Bechet), 바네 비가르(Barney Bigard), 알베르 니콜라(Albert Nicholas), 버디 프티(Buddy Petit), 프레디 케파르(Freddie Keppard), 파파 앤 루이 드 리슬넬슨(Papa and Louis de Lisle Nelson), 키드 오리(Kid Ory) 등등. 크레올이라는 것은 잘아스러운 일이었다. 젤리 롤 모턴은 그가 크레올이라는 것과 그의 본명이 페르디낭 조셉 라 멘스(Ferdinand Joseph La Menthe)라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애를 먹었다.
크레올에 비해 아메리칸 니그로는 훨씬 아프리카에 가깝다. 그들의 주인은 앵글로-색슨계였고, 프랑스-에스파냐계처럼 사회적으로 관대하지도 않았다. 뉴올리언스의 흑은 빈민층은 아메리칸 니그로였다. 크레올은 그들을 경멸했다. 당시 다른 흑인들에 대한 크레올의 계급과 인종 의식은, 기타리스트 자니 세인트 사이어(Johnny St. Cyr)의 지적처럼, "유색 인종 일반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보다 훨씬 편견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뉴올리언스에는 아주 다른 두 뮤지션 집단이 있었으며, 그들의 음악 표현 속에 그 차이점이 드러나 있었다. 크레올은 세련되고 교양있는 편이었고(악보를 읽는 데 능숙했다), 아메리칸 니그로는 자생적이고 활기찬 편이었다(구전으로 음악이 전수되었다). 크레올 뮤지션들이 주로 연주하는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는데, 이 악기는 프랑스에서 대단히 전통 있는 것이었다. 이 유구한 프랑스 목관 악기 전통은 1930년대의 뛰어난 스윙 클라리넷 연주자에게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사실 그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1950년대 말의 에릭 돌피(Eric Dolphy)가 처음이었다.
뉴올리언스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 도시의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만든 요소의 대부분은 프랑스적인 것이었는데, 이것 없이 이 도시의 재즈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도시의 삶의 열정을 표현하는 장이 되었던 그 유명한 마르디 그라스(Mardi Gras) 축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밴드가 장지까지는 슬픈음악을 연주하며 따르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행렬의 선두에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장례 풍습고 프랑스에서 왔다. 이 풍습은 남부 프랑스의 농촌 지역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스토리빌의 자유방임적 풍토 속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발생한 다양한 이국적, 음악적 경향들의 혼합 속에서, 뉴올리언스 스타일이 탄생했다. 그 특징은 세 가지 선율악기-코넷(혹은 트럼펫), 트럼본, 그리고 클라리넷-로 연주하는 ‘자유대위법(free counterpoint)’이다. 코넷의 밝은 사운드가 주선율을 담당했는데, 묵직한 트럼본과 효과적인 대조를 이루게 된다. 클라리넷은 두 금관악기를 복잡한 멜로디 라인으로 엮는다. 이 전면의 멜로디 라인은- 현 또는 브라스 베이스, 드럼, 밴조 또는 기타, 그리고 간혹 피아노 같은- 리듬섹션의 지원을 받는다.
초기 뉴올리언스 리듬은 여전히 유럽의 행진곡 리듬과 매우 비슷하다. 재즈 리듬만의 독특한 ‘플로팅(floating)’효과는 2박과 4박에 강세를 줌으로써 발생하는데, 아직까지는 나타나기 전이다. 강세는 행진곡에서 처럼 여전히 1박과 3박에 있었다.
초기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는 악기 구성이나 사회적 기능 같은 측면에서 그 당시의 마칭 밴드(marching band)나 서커스 밴드와 흡사했다.
뉴올리언스 스타일은 ‘핫(hot)’ 플레잉의 첫 본보기이다. 핫은 그 음악의 감성적 열기와 힘을 암시하며 이 스타일의 특징이 되는 독특한 사운드, 프레이징, ‘어택(attack)’과 비브라토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모두가 음악적 개성이 되었다. 그 악기 연주는 뮤지션 개인의 정서를 표현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출처 : 재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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